재고는 왜 그렇게 중요한가
메모리 반도체 해설 · 만든 양이 아니라 쌓인 양이 말하는 것
메모리 업황 이야기에서 재고만큼 자주 나오는 말이 없습니다. 생산량이나 판매량보다 먼저 언급되는 일도 흔합니다. 만든 양은 회사가 정한 계획이지만, 쌓인 양은 계획과 현실이 어긋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1. 만든 양은 계획이고 쌓인 양은 결과다
메모리 공장은 수요를 보고 그때그때 생산량을 조절하지 못합니다. 웨이퍼가 투입돼 완성된 칩으로 나오기까지 여러 달이 걸리고, 그 사이에 시장이 바뀌어도 이미 들어간 물량은 그대로 나옵니다. 그래서 생산 계획은 몇 달 전의 수요 예상을 담고 있습니다.
그 예상이 맞았는지는 창고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상보다 덜 팔렸으면 쌓이고, 더 팔렸으면 줄어듭니다. 값이 움직이기 전에 이 숫자가 먼저 움직이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 값은 어긋남이 충분히 커진 뒤에 반응하고, 재고는 어긋나는 즉시 반응합니다.
2. 재고는 두 곳에 있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한다
메모리를 만든 회사의 창고에 있는 것이 공급사 재고입니다. 팔리지 않아 남은 것이고, 이 숫자가 늘면 파는 쪽이 값을 지키기 어려워집니다.
그런데 메모리를 사 간 회사 — 스마트폰이나 서버를 만드는 쪽 — 의 창고에도 재고가 있습니다. 이것이 고객사 재고입니다. 이쪽이 쌓여 있으면 그 회사는 당분간 새로 사지 않습니다. 물건은 이미 팔렸으므로 공급사 재고에는 잡히지 않지만, 앞으로의 수요를 미리 당겨 쓴 상태입니다.
두 곳을 함께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공급사 재고가 줄어드는 것이 반드시 수요가 좋아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는 쪽이 값이 오를 것 같아 미리 사 두는 중이라면, 그 물량은 고객사 창고로 자리만 옮긴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옮겨 간 물량은 나중에 주문이 멈추는 형태로 돌아옵니다.
3. 재고 조정이라는 말
업계에서 재고 조정이라고 하면 대개 고객사 쪽 이야기입니다. 쌓아 둔 것이 많다고 판단한 회사들이 새로 사는 것을 멈추고 창고에 있는 것부터 쓰는 기간입니다.
이 기간에는 최종 제품이 평소만큼 팔려도 메모리 주문은 그보다 훨씬 크게 줄어듭니다. 필요한 양을 창고에서 꺼내 쓰기 때문입니다. 메모리 회사의 매출이 세상의 스마트폰·서버 판매량보다 훨씬 크게 출렁이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것입니다 — 수요의 변화가 창고를 한 번 거치면서 증폭됩니다.
반대 방향도 같은 크기로 일어납니다. 창고가 비어 가면 최종 수요가 그대로여도 주문은 평소보다 크게 늘어납니다. 쓸 만큼에 더해 다시 채울 만큼을 함께 사기 때문입니다.
4. 순서가 있다
그래서 업황이 기울 때 신호는 대체로 이 순서로 나타납니다. 먼저 고객사의 주문이 줄고, 그다음 공급사의 창고가 차고, 그러고 나서 값이 내려갑니다. 값은 이 사슬의 끝에 있습니다.
회복도 순서가 같습니다. 고객사 창고가 비어야 주문이 돌아오고, 주문이 돌아와야 공급사 창고가 줄고, 그다음에 값이 움직입니다. 업황이 돌아설 때 값보다 재고가 먼저 방향을 바꾸는 것은 이 순서 때문입니다.
다만 각 단계 사이의 시차는 일정하지 않고, 순서가 그대로여도 폭과 기간은 매번 다릅니다. 이 사이트는 지금이 이 순서의 어디쯤인지 판정하지 않습니다 — 그 판단에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5. 재고는 손익에도 직접 찍힌다
재고는 업황을 읽는 신호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회계 숫자이기도 합니다. 창고에 있는 물건은 자산으로 잡혀 있는데, 그 물건의 값이 산 때보다 내려가면 내려간 만큼을 그 분기의 비용으로 털어냅니다.
그래서 값이 내려가는 구간에서는 그 분기에 판 물건에서 나는 손실에 더해, 창고에 있는 물건에서 나는 손실까지 함께 찍힙니다. 반대로 값이 올라가는 구간에는 싸게 잡아 둔 물건이 비싸게 팔려 이익이 더 크게 잡힙니다.
메모리 회사의 분기 실적이 그 분기의 시장 상황보다 과장돼 보이는 일이 잦은 것은 이 처리 때문입니다. 손익이 왜 그렇게 크게 흔들리는지의 나머지 절반은 메모리 회사의 이익은 왜 그렇게 크게 뒤집히는가에 있습니다.
6. 이 숫자는 화면에 없다
이 사이트는 재고를 싣지 않습니다. 공급사 재고는 회사가 분기마다 발표하는 숫자이고 고객사 재고는 대체로 공개되지 않습니다. 화면에 있는 것은 거래소에서 오는 값과 그 값이 언제 것인지뿐이며, 만드는 방법은 산출 방법에 적어 두었습니다.
공급이 왜 수요에 맞춰 늘거나 줄지 못하는지는 메모리 값은 왜 크게 오르내리는가에, 공장을 늘리지 않아도 공급이 해마다 늘어나는 쪽은 메모리 회사는 개수가 아니라 용량을 판다에 있습니다. 이 세 문서가 같은 그림의 서로 다른 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