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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드 칩은 그대로 팔리지 않는다

메모리 반도체 해설 · 칩과 제품 사이에 들어가는 것

D램은 여러 개를 기판에 붙이면 꽂아 쓸 수 있습니다. 낸드는 그렇지 않습니다. 칩을 아무리 많이 모아도 그것만으로는 저장장치가 되지 않습니다. 사이에 반드시 하나가 더 들어가야 하고, 그 하나가 같은 낸드로 만든 제품의 값을 크게 갈라 놓습니다.

1. 칩만으로는 쓸 수 없다

낸드에는 다루기 까다로운 성질이 셋 있습니다. 첫째, 쓰는 단위와 지우는 단위가 다릅니다. 작은 묶음 단위로 쓸 수 있지만 지우는 것은 훨씬 큰 묶음 단위로만 됩니다. 이미 무언가 적힌 자리를 고쳐 쓰려면 그 자리만 지울 수가 없습니다.

둘째, 수명이 있습니다. 같은 자리에 쓰고 지우기를 반복할 수 있는 횟수에 한계가 있어서, 한 자리만 계속 쓰면 그 자리부터 망가집니다. 셋째, 읽을 때 오류가 납니다. 한 칸에 여러 비트를 담을수록 단계 사이의 간격이 좁아져 더 그렇습니다. 이 성질들이 왜 생기는지는 D램과 낸드는 무엇이 다른가에 있습니다.

이 셋을 그대로 두면 저장장치로 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이에 이것을 전부 처리하는 장치가 들어갑니다.

2. 컨트롤러가 하는 일

컨트롤러는 낸드 칩들과 바깥 사이에 앉는 작은 연산 장치입니다. 하는 일은 대략 넷입니다.

주소를 옮겨 적습니다. 바깥에서 “몇 번째 자리에 써 달라”고 하면, 컨트롤러는 실제로는 비어 있는 다른 자리에 쓰고 그 대응 관계를 따로 기록합니다. 고쳐 쓸 때 큰 묶음을 통째로 지우지 않아도 되는 것은 이 덕분입니다.

닳는 자리를 고르게 씁니다. 같은 자리만 쓰이지 않도록 쓰기를 흩뿌립니다. 이것이 없으면 전체 용량이 멀쩡한데 일부만 망가져 못 쓰게 됩니다.

오류를 바로잡습니다. 읽어 온 값이 조금 틀려도 함께 저장해 둔 검사 정보로 원래 값을 복원합니다. 한 칸에 여러 비트를 담는 제품일수록 이 능력이 중요해집니다.

버려진 자리를 정리합니다. 옮겨 적기를 반복하면 쓸모없어진 조각들이 흩어지므로, 한가할 때 모아 큰 묶음을 만들어 지워 둡니다. 이 정리가 밀리면 갑자기 느려집니다.

3. 그래서 같은 낸드로 만든 제품의 값이 갈린다

컨트롤러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소프트웨어로 정해집니다. 그 소프트웨어를 펌웨어라 하고, 여기서 제품의 성격이 갈립니다. 같은 회사의 같은 낸드를 쓰고도 어떤 제품은 오래 쓰면 느려지고 어떤 제품은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차이가 드러나는 것은 오래, 쉬지 않고 쓸 때입니다. 잠깐 쓸 때는 임시로 빠르게 받아 두는 영역 덕분에 대부분 빠릅니다. 그 영역이 다 차고 정리 작업이 겹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제품마다 성능이 크게 벌어집니다. 사양표의 최고 속도가 같아도 실제로 다른 물건인 경우가 여기서 생깁니다.

4. 기업용과 소비자용은 다른 물건에 가깝다

같은 저장장치라도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것과 개인용 기기에 들어가는 것은 요구가 다릅니다. 서버는 쉬는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래 이어서 써도 성능이 떨어지지 않는 것, 쓰고 지우기를 훨씬 많이 견디는 것, 갑자기 전원이 끊겨도 방금 받은 데이터를 잃지 않는 장치를 갖춘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요구를 맞추려면 여유 용량을 더 남겨 두고, 수명이 긴 방식의 낸드를 쓰고, 부품을 더 얹어야 합니다. 같은 표기 용량이라도 값이 크게 다른 이유입니다. 그래서 낸드 회사에게 어느 쪽에 얼마나 팔았는가는 매출만이 아니라 이익률을 가르는 문제입니다.

수요처마다 사는 방식과 주기가 어떻게 다른지는 메모리는 어디로 팔려 가는가에 따로 적었습니다.

5. 칩을 만드는 회사가 완제품까지 파는 이유

낸드를 만드는 회사들은 대체로 저장장치 완제품도 함께 팝니다. 이유가 둘 있습니다.

하나는 물량을 스스로 소화하기 위해서입니다. 낸드 칩만 팔면 값이 내려갈 때 그대로 맞습니다. 완제품 형태로 팔면 컨트롤러와 펌웨어가 얹힌 만큼 값이 수급에 덜 휘둘리고, 특히 기업용에서는 관계가 오래 이어집니다.

다른 하나는 둘을 함께 설계할 때 더 잘 만들 수 있어서입니다. 컨트롤러는 낸드의 성질에 맞춰 움직이는 장치라, 자기 낸드를 아는 쪽이 유리합니다.

물론 칩을 사 와서 완제품만 만드는 회사도 있고, 컨트롤러만 설계해 파는 회사도 있습니다. 그 나눔은 메모리 반도체는 누가 만드는가에 있고, 같은 업황에서 회사마다 손익이 다르게 찍히는 이유의 한 갈래이기도 합니다(메모리 회사의 이익은 왜 그렇게 크게 뒤집히는가).